고복수 선생

고복수 선생

1911년 출생하여 1972년 사망까지 민족항일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활약한 대중가요 가수이다.

1932년 콜럼비아레코드사 주최 조선일보사 후원의 전국남녀가수신인선발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 가요계에 등장하였다. 그의 아내 황금심(黃琴心)도 광복 전후 최고의 인기 여가수 중의 하나였다.

1933년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타향」(후일 「타향살이」로 개칭)과 「사막의 한」을 불러 인기가수가 되었고, 1939년까지 오케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활약하면서 「짝사랑」, 「휘파람」, 「이원(梨園)의 애상(哀傷)」, 「풍년송」 등을 불러, 인기의 절정에 달하였다.

1942년 이후 「풍년송」을 부부가 열창하였고,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도 활동하였다.

광복 후 전옥(全玉)이 주관하던 백조악극단(白鳥樂劇團)의 주요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950년 괴뢰군에 붙잡혀 의용군에 강제 입대되었고, 그해 늦가을 국군에게 구출되어 군예대에 편입, 활동하였다.

1957년 8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가수생활 25년을 결산하는 은퇴공연을 가졌고, 1959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자리) 5층에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을 개설,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을 경영하면서 이미자(李美子), 안정애(安貞愛) 등의 인기가수를 배출하였다.

1960년 극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여 서적외판원 등으로 전전하며,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가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곡 : 「타향살이」, 「짝사랑」